戒滅懺-불교에 귀의하는 것)의 법으로 우매한 중생을 깨우쳐 주어야 할 것이다."
그렇기 때문에 원광은 자신이 살던 가서갑에 점찰보(占察寶-법회를 뒷받침하기
위한 재단)를 두고 이것을 상규로 삼았다. 이때 어떤 여승이 시주하다 밭을 점찰보에
바쳤는데, 지금의 동평군에 있는 밭 100결이 바로 힌 이것으로 그때의 기록대장이 아직도
남아있다. 원광은 천성이 허정(虛靜)한 것을 좋아하였으며 말할 때에는 늘 웃음 띤 얼
굴이었고 노한 빛은 없었다. 그의 나이가 이미 많아 수레를 타고 대궐로 들어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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